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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꼬대

호사도요 Painted Snipe / Rostratula benghalensis/ 24cm

by plover 2010. 3. 25.

 

 

새를 보는 사람이라서 (새를 안보는 사람도 있나?)

이런 호사스러운 새를 만나는 호사를 한다고 해야 하겠지.

서울을 떠나 고창 선운사 옆동네까지 논스톱으로 달려갔다.

낯설고 물설은 곳에서도 작은 개울. 가뜩이나 수면부족으로 시린 눈에 황사 낀 바람마저 가세하여 눈물도 찔끔거렸을 것이다.

밋밋한 하천을 오르내리며 찾고 또 찾았다.

세 마리의 꺅(Snipe)이 돌과 풀 사이에서 졸고 있었다.

'그렇지, 처음에는 다 이렇게 시작하는거야...호사도요도 Snipe 잖은가...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여긴 꺅들이 좋아하는 곳...곧 만나게 되겠군... ㅋㅋㅋ

 

 

 

 

꺅들을 저격수(Snipe)라고 명명한 것은 놀랍다.

외적 생태적 특징을 참으로 초간단 한방으로 다 말한 것.

암살자들이 꺅도요들처럼 위장을 잘하고 그들처럼 은밀하게 움직이고 또 그들과 같은 예민하고 성능 좋은 장총을

가졌다고 친다면 최고의 프로일 것이다. (이것도 새를 보는 사람들은 다 안다)

하지만 이 꺅들은 공통적으로 저격수의 그것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커다랗고 순하고 아름다운 눈을 가졌다.

눈물이 묻어있어 흑요석같은, 웃음이 섞여있어 샘물같은 아이의 눈,

증오와 모함을 몰라서 맑고 밝은 동물의 눈만큼 아름다운 것이 있던가?

그 말간 깊음에 빠져들지 않고 배겨내기도 하는 흐린 얕음을 또 우리는 가질 수가 있기도 하던가?

 

 


 

 

우리는 생명들에게서늘 눈을 보고 싶어한다.

거기서 무엇을 찾아 내고자 하며 또 찾아 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호사도요의 수줍고 겁많은 눈과 그것에 한벌인 양 어울리는 극소심한 동작들을 렌즈를 통해 보면서 많이도 웃었다.

게걸스레 먹다 고장난 턱관절 때문에 큰 소리로 웃을 수는 없었지만 필시 뺨에 잔주름 서넛은 더 남도록 오랫 동안 큰 주름을 잡고 있었을 것이다.

 

 

 

 

 

 

돌아와서 도감을 들여다 보는 순간 호사도요처럼 눈이 커졌다.

'Painted Snipe?'

oh my...!

'채색한, 그림그린 듯 예쁜 꺅도요"라는 말이지?

우와... 이거 정말 대단하잖은가!'

호사도요가 날개를 펼칠 때 나는 클림트를 보았다.

굳이 '키스'가 아니더라도 그가 떠오른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던 것.

그렇다면 명명자는 새 이름 하나로 이 나의 심금을 울리게 될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


 

 

 

 

 

좀 더가보자.

그림과 관련없는 다른 뜻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사전을 뒤졌다.

놀랍게도 "painted woman" 은 그린듯 예쁜 여인이라는 뜻이 아니라 '거리의 여인' 다시 말해 아주 가벼운 여자라는 뜻.

점입가경이다. 호사도요는 바로 그것으로 널리 알려진 일처다부제를 취하는 새다.

학명은 어떨까 하여 라틴어 사전도 뒤적거렸으나, 바보의 답변.

어느 쪽일까?

"그린듯 아름다운 새" 혹은"매춘하는 새".

 

 

 


 

 

 

나의 경우를 말하자면, 영명을 보는 순간 명명자의 재치와 감성에 혹했고 시가 들렸고 그림이 보였다.

참 못말리는 과장이요 허풍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늘 이러하니...

그를 믿기로 했다.

그러자 그의 속삭임이 들렸다.

"Painted Snipe는 색을 정말로 잘 다루는 화가가 그린듯 아름다운 새...

한데 미색은 또한 도화살을 부르는 법이잖소?

하여 그림같이 아름답고 음탕한 새라는 뜻이라오." ㅋㅋㅋ

 

 

 


 

 

 

수컷보다 예쁜 암컷이 여러 마리의 수컷을 거느리고 산다고 그 모습이 호사스럽다고 호사도요라 한다고들 한다.

그저 그런 분석에 설명이다. 한 두번 쯤은 고개를 끄덕이게도 된다.

하지만 2% 부족한 느낌이 찐득하니 남는다.

단지 암컷의 생태만 들춰 설명하기엔 그들의 자태와 겉옷과 속옷 그리고 디자인과 색채에의 미련이 큰 것.

 

 


 

 

 

이 Painted Snipe가 갑자기 하던 짓을 멈추고 긴장하는 자세를 취할 때 내 숨도 헉하고 잠시 멈추었을 것이다.

새가 그 비밀의 합죽선을 서서히 펼치기 시작한 것.

아, 돌아서서 말이다. 멀리서 말이다. 지저분한 배경으로 말이다.

해서도 복잡오묘한 색채와 기하학적 문양들...꽃이 피고 별이 명멸하고 희열이 가득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저 희디 흰 포기 슈미즈는 누구의 것이던가?

 

 

 



 

 

 

인연지어질 일 없었을 낯선 곳

어떤 상념의 한 모퉁이

현실과 꿈의 접합 부위

술과 다정한 대화와 여행의 연속선 쯤이었다.

나서 지금껏 만난 이들을 떠올려 보았다. 낫놓고 기억자 생각해 내듯 Painted Snipe 보면서 말이다.

처음에는 초저녁 별처럼 하나 둘 떠올랐다.

헌데 더러 기억은 우수수 낙엽이 지고 우루루 홍수도 났다.

넓은 기억의 잔디밭, 거기 노란 민들레 피어있듯 사람들이 가득히 그리고 또렷이도 피어 있었다.

누가 호사도요를 닮았던 것일까?

참으로 호사스러운 게 새보는 취미다.

클림트, 못 다 본부분을 포함하여 그 온전한 그림을 깨끗한 초록 배경으로다시 보아야 한다며 벼르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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