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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꼬대

모르는 척 다가오는 새 한 마리 1

by plover 2013. 5. 10.

 

 

좁은 시야와 여유없음의 어설픈 풍경사진들 그리고 잠꼬대

 

 

 

 

 

 

 

 

 

 

 

 

 

 

 

 

 

 

 

 

 

 

 

 

 

 

 

 

 

 

 

 

 

 

 

 

 

 

 

 

 

 

 

 

 

 

 

 

 

 

 

모르는 척 다가오는 새 한 마리 1

 

 

 

하루키의 「태엽 감는 새」 마지막 시리즈를 읽기 시작하면서 여행을 떠나기로 결정한다. 특별히 권여행하는 스토리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사실 그가 무시로 맥주에 대해 수다를 떨거나 음악에 대해 심플하면서도 예리한 감상을 이야기할 때 혹은 분위기에 어울리는 레퍼토리를 읊조릴 때에는 사뭇 목이 마르고 고요히 음악을 들을 준비가 이루어지곤 했지만 이번에는 여행에의 욕구를 자극한 것은 딱히 없었다. 굳이 뭐라도 한 가지 말하라 한다면 언제나 그렇듯 그의 말투쯤이다. 그는 무엇에 대해서건 무심한 듯, 중요한 것은 없다는 투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술술 다 털어 놓는 바흐 조로 시냇물처럼 흐르다가 말러처럼 심각하고 치열하게 끝을 맺는다. 이야기의 매듭은 존경스럽게도 늘 명쾌하다. (하루키는 마흔 권이 넘는 책을 썼다. 너무 많다, 대단하지 않은가!) 그는 여름날 툇마루로 불어오는 난데없이 시원한 바람 같은 말투로 언제나 내가 가진 고민이나 우울의 정곡을 쿡 찔러버린다. 이내 나는 바람수다 앞에서 무장해제 되곤 하는데 이번에도 걸려 든 것으로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책을 펼치면 그가 말을 걸어오는 것이다. “k씨, 오늘은 얼마나 무거운 거야? 혹시 지나 온 과거를 채석장에서 갓 떼어 내어 5톤 트럭 적재함에 가득 실은 바위들이라고 한다면 그 중 하나쯤의 무게는 되는 건가? 그거 알아? 무게는 힘에 반비례 하는 것 말이야. 아무리 무거운 것이 떨어져 내려도 짓눌리지 않는 방법은 그래서 두 가지야. 피하는 것과 힘을 기르는 것. 시간이 없다고? 선택은 자네 몫이지, 물리 공부 시간은 언제나 지루했지만 아보가드로의 법칙은 잘 기억하고 있는 거지? 「질량 불변의 법칙」, 나한테는 이렇게 들려, ‘무게를 가진 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어릴 때는 이해할 수 없었고 젊을 때는 무시하고 싶었던 것, 하지만 이젠 잘 알잖아? 변하는 것은 없고 일어날 일은 모두 일어나고야 만다는 것을 말이야. 그러나 즐겁게 사는 거야.”

 

여행의 컨셉을 잡아야 했다. 얼마 전부터 마음에 두고 있던 스리랑카(처음이지만 인도 때문에 조금은 익숙하게 느껴지는)로 가서 정처없이 떠돌거나 분위기 좋은 한 곳에서 푹 머물다 올 것인지, 아직 가보지 못한, 이제 가을로 접어들 뉴질랜드 남섬으로 가서 온전히 새로운 새들과 순정한 자연에 몸과 마음을 맡겨 볼 것인지, 그리고 그러나 불편함과 긴 이동의 시간이 오히려 프리미엄이 되어 친근함과 평화로움을 더 크게 안겨주는 격오지 같은 곳은 어떠할지 -그런 곳에서는 흔한 선량들을 만나다 보면 나도 좀 착해지는 느낌이 들 테고 더불어 가벼워지는 경험도 해 볼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거긴 900종의 새가 산다고 한다, 900종이라니! 궁리에 이어 생각은 경험에도 접속한다. ‘포카라의 부메랑 식당에는 아직 구룽과 아만이 있을 것이다(그냥 드는 생각이다). 작년에 찍은 사진을 전해 주어야 한다. 조그만 선물 안에 사진을 담아서 주면 그들의 그 심플한 미소를 다시 볼 수도 있을 거야...’- 여행지를 결정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KAL 스케줄은 4박,8박,11박,15박...으로 증가하는 수열을 보여준다. 세 번째 항을 선택한다.

 

치트완의 아침은 언제나(그래봐야 나흘이지만) 비갠 초여름날처럼 상쾌하다. 안에서도 들리는 여러 종의 새소리들은 문을 열고 나서면 비닐과 유리의 차이 만큼이나 분명하게 음색과 음량이 증폭되어 맑은 밤 별처럼 쏟아져 온다. 아직 인적이 드문 넓고 고요한 뜰을 연주홀 삼아서 새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는 것인데 이른 아침의 새소리는 음향 좋은 홀의 그것처럼 공명과 자연스러운 증폭을 동반한다. 깃털 한 올조차도 흔들지 않는 완벽에 가까운 공기의 고요함과 엷은 안개 그리고 크고 작은 나무들과 적당한 간격의 건물들이 그것을 만들어 내는 것일 게다. 난간을 짚고 잠시 멈춰 선다. 소리는 귀로만 오지 않고 피부에도 와 닿는다. 분명한 터치감, 새로운 경험이다. 가끔 큰 음량으로 음악을 들을 때면 소리가 온몸을 감싸는 느낌에 더불어 약한 압박감을 느끼곤 하지만 지금 들리는 새소리는 새들이 피부를 가볍게 톡톡 쪼는 것 같은, 세찬 바람에 섞여온 모래알이 얼굴에 부딪칠 때처럼 분명한 질감이 있다. ‘새소리는 모두 다 어쩌면 이렇게 맑고 곧을까? 굵고 거친 듯한 새소리도 자세히 들어보면 마냥 그렇지만은 않다. 그것은 나름의 부드러움과 맑음을 포함하고 있다.’  오며 가며 마주치던 다알리아가 유난히 크고 화려하게 보인다.

 

사파나 빌리지 랏지는 팔짱이라도 낀 것처럼 랍티강을 지척의 곁에 두고 있다. 둘 사이에는 담도 울도 없다. 무방비한 개방이 주는 화려한 자유감과 자연스러움의 가치를 아는 오너가 지시했을 것이다, 아무것도 두르거나 막아 세우지 말라고. 고마운 일이다. 강과 그 양쪽으로 넓게 펼쳐진 초록의 평원은 안개가 자욱하다. 하지만 안개는 강과 초원을 부드럽게 덮고 있을 뿐 이미 동쪽 평원의 끝에는 석류 빛 해가 반쯤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시야를 별로 가리지 않는 자욱한 안개라는 말은 치트완에서는 모순이 아닌 것이다. 어제 낮에는 낚시를 하거나 그물질을 하는 사람들이 강 여기 저기서 보였는데 지금은 먼 시야를 포함해도 두 사람만 보인다. 안개 낀 강둑에 서서 조그만 낚시도구를 드리우고 있는 남자는 아버지일 것이고 그 곁에서 호주머니에 손을 찌른 채 짝다리를 하고 지켜보고 있는 소년은 아들일 것이다. 이곳 사람들의 형편과 쉽지 않은 식량사정으로 미루어 볼 때, 가장 입질이 좋은 시간인 동틀녘 낚시를 한가롭게 즐기고 있을 것이라 보는 것은 어렵다. 오히려 아침 끼니를 마련하러 나온 가족 낚시팀일 것이라고 상상하는 편이 더 옳을 것이지만 그들에게서는 서두르거나 조급해 하는 기색이라곤 보이지 않는다. 고요한 아침풍경 속의 한 정물이 되어 단연 아름다운 존재로서 주변과의 조화를 리드하고 있을 뿐. 앞을 보면 몸과 마음은 어느새 강과 평원으로 달려 나가는 듯하고 뒤로 돌아서면 사파나의 보이지 않는 경계의 안 쪽이다. 아기자기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의 호텔이다. (2로 이어짐)

 

 

 

 

 

 

 

 

 

 

 

 

 

 

 

 

 

 

      

 

                나흘을 묵었던 방의 창문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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