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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꼬대

모르는 척 다가오는 새 한 마리 2

by plover 2013. 5. 10.

 

 
가장 먼저 소개했어야 할 새였다. 하지만 인사 한 마디 없이 사진을 올리는 것은 예의가 아닐 것 같았다.
내일이면 섬으로 간다. 봄섬의 새들 속에 묻히게 하고 싶지 않아서 늦도록 썼다. 
치트완의 사진들을 반복해서 보는 동안 마음은 아직 거기 머물고 있음을 느끼기도 했다.  진행형의 지난 이야기이다.
 
 

                                                                                      

 

 

      Asian Paradise Flycatcher
 

 

 

 


 

 

 

 

 

 

 


(1로 부터 이어짐))
강과 평원을 향해 활짝 열려있는 식당에는 이제 막 아침식사를 시작한 독일인 젊은 커플이 있을 뿐이다. 곧 여러 국적의 사람들이 몰려들며 왁자지껄해질 테지만 아직은 고요한 아침의 아름다운 강변 풍경의 한 부분으로서의 역할을 잘 해내고 있다. 안개 낀 아침의 햇빛이라고는 하지만 나는 그늘을 두고 햇빛 아래서 밥을 먹는 일 따위는 결코 하지 않는 한국사람이다. 그러나 오늘 만은 주방 쪽을 제외하고는 온통 훤히 트인 자리를 차지하고 앉는다. 300mm afs, F4 단렌즈를 장착한 카메라를 가장 손이 가기 쉬운 곳에 위치시키고 커피를 마시며 잉글리쉬 브렉퍼스트를 기다린다. ‘음악이 좀 있었으면... 바흐가 좋겠다. 평균율이나 무반주 첼로 소나타. 후자라면 1번의 5악장 미뉴엣이면 더할 나위 없겠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음울하지도 경박하지도 않는 묵직한 경쾌함의 그것.’  음악을 떠 올리는 것도 잠시, 언제부턴가 수많은 새들의 지저귐 속에서 한 수상한 소리를 듣고 있었다. 거제도에서 초여름부터 늦여름까지 언제나 흥분과 설렘으로 듣곤 하던 긴꼬리딱새의 그것과 흡사한 휘파람 소리이다.  확신은 없다. 열에 대여섯은 휘파람과 비슷한 소리를 내는 것이 새들이다. 그렇지만 만약 저 소리가 긴꼬리딱새의 그것이라면 그 개연성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눈부신 화이트일지도 모른다는 가당찮은 꿈이 꿈틀 고개를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다.
 
고백컨대 이번 여행은 있을지도 모를 큼직한 위안을 바라며 만사를 제쳐두고 떠나 온 도피여행이다. 소박한 듯 자유롭고 허술한 듯 짜임새 좋은, 남루한 가난이 골목마다 질펀하지만 아무도 불행해 보이지는 않는 기이한 매력을 가진 도시, 카트만두는 위안 같은 것을 얻기에는 이미 너무 번잡하게 변해 있었고 무엇보다 시도 때도 없이 자욱히 이는 먼지가 곤혹스러웠다. 역시 나는 새와 나무와 강과 바람의 편에 서 있는 사람이다. 먼지 자욱한 건기의 도시, 카트만두 주변의 산 나가르중과 쉬바푸리에서의 이러 저러한 아쉬움들도 모두 치트완을 바라보고 있었다. 광활한 밀림과 드넓은 평원 그 사이를 누비듯 흐르는 랍티강, 거기다 먼저 다녀 온 사람들이 남긴 기록들은 예외 없이 찬탄해 마지 않는 치트완이었다. 

조촐한 음식이 나온다. 계란 프라이 두 개, 토스트 두 조각, 반으로 잘라 구운 토마토, 양송이와 피망에다 야채 몇 가지를 섞어 살짝 볶은 것.(다음 날은 잉글리쉬 대신에 프렌치 브렉퍼스트를 시켰는데 다른 것은 모두 같고 토스트 대신 크로와상이 나왔다. 두 나라의 차이를 이렇게 귀엽게 표현할 수 도 있구나 싶어 웃었다.) 계란 프라이를 조금 떼어 입에 무는 순간 꽤 분명하게 그 특유의 짧게 끄는 듯한 휘파람 소리가 들린다.  키 큰 나무들이 서 있는 오른 편 어디 쯤인 것같다. 긴가민가 하던 생각이 화들짝 긴장으로 바뀐다. ‘아무리 많은 새들이 서로 비슷한 소리들을 낸다고 하지만 저것은 긴꼬리딱새의 것이다.’  내가 앉은 곳에서 가장 가까운 나무는 10여 미터 거리다. 휑하니 오픈된 곳이고 나무는 크지도 무성하지도 않다. ‘그래도 무슨 새인지는 모르겠지만  저 나무 저 가지에 앉아주면 좋으련만.’  가만히 포크를 든 채 소리나는 쪽으로 모든 신경을  집중시킨다. 짧게 끄는 휘파람소리가 분명히 더 커졌다라고 느낀다. 그 순간 나비 같은 율동으로 긴 꼬리를 휘날리며 새 한 마리가 날아온다. 번쩍 일어나는 일이라 현실감은 없다. 마치 꿈 한 조각 같다. 그러나 그 나무의 그 가지에 새가 앉았다. 검은 머리, 자그마한 하얀 몸통 그리고 눈부시게 희고 믿을 수 없이 긴 꼬리.
 
엄연히 현실에 존재하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꽤 쉬운 일 또는 대상이기도 하다. 나도 그것을 간절히 원한다. 나와 그것 간의 물리적인 거리는 대단히 큰 것 같지는 않다.  그에게 가까이 가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은 듯 여겨진다.  그러나 무슨 이유인지 그것의 본질에 직접 닿는 것은 여전히 어렵거나 거의 불가능한 듯해 보인다. 시간이 흐르면서 마침내 그것의 존재 여부가 의심되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타인의 현실과 나의 그것 사이에는 벽이나 투명막이 가로 놓여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곧잘 하게 된다. 그런 것들이 있다. 도감을 펼쳐놓고 펄럭펄럭 넘기다가 눈길을 사로잡는 새들을 만나는 것이다.  눈 위에서 살지만 장미처럼 붉은 새, 어두컴컴한 덤불 숲속에 사는 눈처럼 희고 상모같이 긴 꼬리를 가진 새, 자기 몸길이 보다  길어 보이는 가는 부리를 가진 새, 호안 미로가 그린 나무에  앉으면 잘 어울릴 듯한 굵고 단순한 선으로 그린 듯한 심플한 체형에 공처럼 둥근 머리와 큰 눈을 가진 새, 몸통 보다 몇 배는 더 긴 눈썹을 가진 새, 타오르는 횃불같은 목도리와 바람같은 덮깃을 가진 새...그들을 잘 믿지 못하는 이유는 모두 진화에 역행하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  하지만 어딘가에는 존재하지만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다니 정말이지 믿을 수 없을 만큼 어리석고 낡은 생각이 아닌가! 몸이 세월과 함께 추하게 늙어가는 동안, 마음은 그 반대의 길로 쉼없이 달려가도록 고삐를 풀고 경계를 허무는 것이 유한한 인생에서 해야 할 큰 일일 것이다. 상상하고 꿈꾸는 모든 것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믿어보는 좋지 않을까. 밑져야 본전이다. 그러하지 않을 까닭도 없고 그러하지 못할 이유는 더욱 없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모든(그 동안 읽은 모든)소설에서와 같이 이 모두는 꿈이며 모든 꿈은 또한 현실일지도 모른다.
 
새가, Asian Paradise Flycatcher 백색형 한 마리가 내가 가장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날에 왔다. 다소 허술해 보이는 위치이지만 그래도 저 나무의 아래 부분에서 오른 쪽으로 뻗은 가지 위에 앉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길고 흰 꼬리를 이끌며 날아와서 그곳에 앉았다. 놀랍도록 아름다운 새라고 생각하는 여러 새들 중에서도 진화에 가장 역행하는 모습을 가졌다고 생각하던 새. 그래서 다른 어떤 아름다운 새들보다 만나기 어렵거나 조우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해왔다. 가슴이 뜨거워진다.  무엇인가가 누군가가 내 어깨를 감싸 안고 등을 토닥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분명하게 말이다.
 
 

 

 


 

 
 

 


                                                                                                   2013,03 Chitwan, Nep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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