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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rds of West Papua/Papua 2016 June

Western Parotia, 30-33cm (endemic)

by plover 2016. 8. 2.

 















웨스턴 파로티아와의 첫 만남



Zeth's 게스트 하우스 뒷편의 다른 lek.

BBC, EBS 등의 웨스턴 파로티아는 대부분 이 장소에서 촬영되었다.  * 200mm 이내












*너무 늦은 포스팅입니다. 바쁘기도 하였고 마음의 여유가 없기도 하였고 기다리지 말고 아예 포기하시라고 부러 늑장을 부린 것도 조금 있었습니다. 내일이면 업무로 복귀하는 지라 마지막 날 열심히 적어 아르팍의 요정 하나라도 소개합니다. 



 


 


그들은 웬만해서는 초대장을 받지 않는다



"파푸아에서 가장 보고싶은 새는 누구였던가?" 하고 물어온다면 나는 대답을 좀 망설일 것같다. 전후 사정없이 말하면 아르팍 아스트라피아 그리고 블랙 식클빌이라고 하겠지만 그들은 다분히 비현실적인 어떤 존재였다 . 아스트라피아를 본 사람은 드물고 블랙 식클빌 또한 높은 고도에서 운이 따라야 만나게 되는 새인 것이다. 트립 리포트의 저자들은 아르팍의 BOP 들 중 유독 Western Parotia 와 Magnificent BOP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나 또한 자연스럽게 인간이 그들로 부터 발레와 발레복 마저도 배워왔음 직한 요정같은 웨스턴 파로티아와 곤충의 아름다움을 빌려와 치장을 한 듯한 신기한 새 매그니피선트 BOP에 대한 기대를 가지게 되었다. 버드와처라면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몇 종의 BOP를 만나기에 가장 좋은 곳이라는 명성을 가진 아르팍에 왔지만 예기치 못한 사정으로 새들을 제대로 볼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당연히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아르팍은 좀 달랐다. 엘리아킴도 시타도 그들의 캡틴격인 제쓰도 새를 이야기할 때는 어떤 모호함이 없었다. 아르팍에서의 첫번 째 BOP가 된 매그니피선트 디스플레이 장소에 갔을 때, 그리고 약속이라도 한 듯 새가 출현해주었을 때 그들이 보여준 자신감의 이유를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제쓰의 리드로 26년 동안 사냥을 금하고 벌목을 중단한 아르팍은 극락조의 개체수가 오히려 늘었을 뿐만 아니라 새를 볼 수 있는 환경은 대단히 시스테믹하게 변화했다. 놀랍게도 Superb BOP를 제외하고 모두 야무진 하이드를 가지고 있었다. 한둘이 아니었다. 앞산 뒷산 혹은 고개너머에도 하이드가 있고 지금은 어느 지역의 하이드가 가장 active 한지 훤히 꿰고 있었다. 님보크랑에서의 여독이 아직 풀리지 않았기 때문에 내일 당장 높은 산으로 등반을 하는 것은 무리라고 하자 제쓰는 '밍그레'라는 곳을 강력히 추천했다.  두 시간 정도 걸어야 하지만 차가 다니는 큰길이라서 쉽게 접근할 수있다는 것이었다. 타겟 종은 웨스턴 파로티아, Vogelkop Bower 그리고 Black-billed Sicklebill 이라고 했다. 이름을 듣는 것 만으로도 심장박동이 빨라지는 그런 새들이었다. 엘리아킴도 웨스턴 파로티아를 보기에 가장 좋은 장소라며 거들었다. 


밍그레는 내가 모르는 곳이고 예상치 못했기 때문에 어떤 계획을 가지고 갈 것인지 물었다.  그곳에는 또 다른 게스트 하우스가 있고 3박 4일 일정이 좋겠다고 했다. 나는 처음에는 가이드와 둘이 필수품만 챙겨서 가면 숙식은 밍그레의 게스트 하우스에서 구매할 수 있는 것으로 알아들었고 좋은 계획이라고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런데 엘리아킴이 뜬금없이 물어왔다. 포터와 요리사는 어떻게 하겠느냐고. 뜨아해진 나는 요점을 다시 캐물었다. 그의 대답은 이러했다. "밍그레는 조그만 마을이다. 와이프의 부모님 집에서 묵을 수 있다. 그런데 지금 그 집이 비어있기 때문에 일정에 필요한 식품을 가져가야하고 요리사가 필요하다." 그리고 덧붙였다. 짐이 많지 않으므로 자기가 포터를 겸하고 요리는 와이프가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좀 실망이 되었다. 이미 하루를 그의 집에서 묵으며 세 끼니를 먹은 사람의 심정이었다. 기름때가 보이는 프라스틱 그릇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의 부인은 언제나 하얀 밥에 반찬 딱 한 가지만을 만들어 주었다.  첫째 날 저녁, 마노콰리에서 서둘러 오느라 점심을 제대로 먹지 못해서 잔뜩 허기진 상태였는데 저녁식사로 나온 음식은 소복히 담은 하얀 밥과 마노콰리에서 사온 참치캔을 데워서 그릇에 담은 것이 전부였다. 파푸아 원주민들의 소박한 식생활이려니하고 이해는 하였지만 배고픔에 비해 눈과 입은 게으름을 부리고 있었다. 번쩍 생각난 것은 한국에서 가져온 컵라면이었다. 님보크랑의 훌륭한 음식들이 간절히 그립기도 했다. 거기서는 컵라면을 소비할 틈이 전혀 없었고 생각도 나지 않았다. 뜨거운 물을 부탁해서 처음으로 신라면 큰 컵라면을 밥과 함께 먹었다. 엘리아킴에게도 권했으나 극구 사양하였는데 깊은 뜻이 담겨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먼 이국에서 준비해 온 소중한 식량을 가이드가 축내어서는 안된다는 배려였다. 꽤 강한 의지처럼 여겨졌다. 내가 식사를 마치고 젓가락을 내려놓자 엘리아킴이 물었다. "이너프?"(식사 후엔 항상 이렇게 물어봐 주었다) 나는 충분하고 끝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그러면 이것을 내가 먹겠다라고 하더니 반이나 남은 라면 국물을 여초의 망설임도 없이 자기 밥 위에 부어 버렸다.  나는 너무 당황하여 허공에 손을 내저었다.  국물에 밥을 말아서 먹었기 때문에 안에는 먹다 남은 밥알도 많이 남아 있을 뿐 아니라 나눠 먹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기에 마음껏 편하게 먹고 남겨놓은 라면국물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아주 맛있다면서 먹는 모습을 부끄러운 마음으로 가만히 지켜보는 수 밖에는. 그런데 보다 현실적인 문제가 있어보였다. 나는 부부가 함께 밍그레로 가면 세 아이들(열살 맏아들, 여덟살 딸, 다섯살 막내아들. 처음 그를 만났을 때는 총각인 줄만 알았다. 그는 스물 여섯에 세 아이의 아버지였다) 과 노모는 누가 보살피는지 물었다. 엄청난 반전 같은 놀라운 답변이 돌아왔다. "모두 함께 갑니다."  "..." 나는 살아오는 동안 이렇게 멋진 결정을 해본 적이 있었던가? 그의 말  한마디에 나의 서운함이나 불만 같은 것은 먼지처럼 사라져 버렸다.


얼마 후 우리는 길 위에 서 있었다. 다섯 살 난 막내를 빼고는 모두 배낭이나 보따리를 지거나 들었다.  3박 4일 동안 먹을 식량과 조리도구에 간단한 침구도 있었다. 그것은 일견 피난행렬 같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다섯 가족과 한 손님이 함께 하는 소풍에 더 가까웠다. 나와 아이들은 말은 통하지 않지만 연신 의미심장한 웃음을 나누며 걸었다. 발걸음이 가볍기로는 나도 아이들과 같았다. 길 양켠에는 새들이 많았다. 오후가 되면 영락없이 안개가 몰려오는 아르팍에선 새를 만나더라도 사진을 찍기는 쉽지가 않다. 그러나 언제고 날을 잡아 제대로 탐조해야 할 코스임엔 틀림없었다. 해가 지기 전에 밍그레에 도착해야 한다는 미션이 없었다면 혹은 아주 천천히 걸었더라면 페루의 마누로드에 뒤지지 않을 탐조실적을 낼수 있었을 것이다. 밍그레는 Mokwam 삼거리(가칭) 바로 옆 언덕바지에 있었다. 찍어낸 것처럼 같은 모양의 집 여섯 채가 있었는데 모두 빈집이었다.  아이들은 짐을 풀자마자 외가집 마당에서 깔깔거리며 놀이부터 시작했다.  엘리아킴과 그의 가족들이 묵을 집과 가장 가까운 집 하나를 통째로 나에게 내주었다. 나는 속으로 혀를 내밀었다. '이 을씨년스럽고 횡한 곳에서도 커다란 빈집에 혼자 있으라고?' 나는 엘리아킴에게 옆방도 비어있으니 여기서 함께 묵자고 청해보았다. 그러나 그는 밤이면 춥기 때문에 이지역 사람들은 방안에 불을 피워놓고 가족이 모여서 잔다고 했다. 지난 밤 몇 번인가 밖에 나갔을 때 마을을 감돌고 있던 쑥냄새와 흡사한 향을 가진 그 연기의 정체가 자연스레 풀어졌다. 나는 더 이상 징징댈 수가 없었다. 그가 안내해 준 방 안에는 맨살을 드러낸 나무 침상 하나만 덩그라니 놓여 있었다. 이미 그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아무 렌즈도 거치지 않은 맨눈으로 보기로 마음을 먹었고 또한 즐기기로 작정을 한 터여서 의연한 척 콧노래를 부르며 한국에서 가져간 우레탄폼 매트리스를 깔고 그 위에 침낭을 펼쳤다. 손전등도 꺼내어 손이 가기 쉬운 곳에 두었다.  전기가 아예 들어오지 않으므로 어두워지기 전에 잠자리 준비를 마쳐야 했다.  해는 이미 떨어졌고 빠르게 어둠이 내려오고 있었다. 역시 아주 간단한 저녁을 먹은 후 그와 굿나잇 인사를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무심결에 손전등으로 방안을 비춰보다가 놀라고 말았다. 원목으로 된 벽 사방에 검은 물체가 잔뜩 붙어있었다. 매미 크기만한 바퀴벌레들이었다. 불을 비추어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붙어 있었다 몇 마리인지 세는 것이 불가능했다. 한 시간 전만 하더라도 전혀 보이지 않았는데 나무의 틈속에 숨어 있다가 어두워지니 활동을 시작한 것이었다. 바퀴벌레를 보고 호들갑을 떠는 편은 아니지만 이대로 편안하게 잘 수는 없을 것 같았고 대책이 필요했다.  이미 가족이 있는 숙소안으로 사라진 엘리아킴을 불러내어 도움을 청했다. 그의 태도는 의외로 덤덤했다.  별거 아니라는 듯 몇 마리를 밖으로 들어내거나 눌러버렸다. 이상하게도 그런 소란속에서도 바퀴벌레들은 붙은 자리에서 꼼짝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엘리아킴은 이제 다 없어졌다며 나를 불렀다. 정말 그 많던 바퀴가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이들은 단지 냄새를 풍길 뿐 물거나 위험하지 않다고 했다. 아닌게 아니라 방안에는 노린재의 노린내와 흡사한 냄새가 났다.  아무튼 바퀴는 사라졌고 더 이상 그를 성가시게 할 수 없었다. 다시 한번 굿나잇 인사를 하고 침낭을 얼굴까지 끌어올리고는 잠을 청했다. 


블루 그레이 로빈의 모닝콜을 들으며 잠이 깨었다. 밤새 안녕이었다. 손전등을 켜놓은 채 이른 아침을 먹고는 드디어 Western Parotia를 향해 걸어 내려갔다. 집이 언덕 꼭대기에 있었으므로 모든 lek 과 hide는 아래 쪽에 있었다.  정글에 도착하는 시간은 거의 언제나 다섯 시 반 경이었다. BOP들은 모두 약속한 것처럼 그 시간부터 디스플레이를 시작하였고 마치는 시간은 상황에 따라 제각각이었지만 오전 쇼는 열 시 반 이전에 숲속의 모든 무대에서 끝이 났다. 가이드는 이미 웨스턴 파로티아 수컷의 콜을 듣고 있었다. 새들이 다 그러하지만 BOP들은 그들의 세레모니에 있어서 훨씬 더 체계적인 행동 패턴과 규칙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일 주일 간 매일이다시피 그들을 만나면서 내가 이해한 것은 이러했다. 1) 시간이 되면(오전: 05:30, 오후: 14:30) 수컷 BOP은 lek으로 가겠다고 숲속의 암컷들에게 알린다. 2) 렉 가까운 곳에 도착하여 주변을 살펴보고 안전하다는 판단이 서면 좀 더 적극적인 콜을 날린다. 3) 무대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 도착하여 두세 번 콜을 한 후 내려와 청소 및 정돈을 마치고 깃을 다듬어 춤출 준비를 한다.  4) 이제 자신은 모든 준비가 끝났으니 지상최고의 쇼를 볼 숙녀들은 어서 모이라며 자신감 넘치는 콜과 송을 연거푸 날린다. 5) 어딘가 가까운 곳에 암컷이 왔다는 기척을 느끼면 마침내 쇼를 시작한다.  우리는 빠르지만 조용한 걸음으로 한 하이드 앞에 도착했다. 정갈하고 단아한 초가집 같은 하이드는 나무가지와 팜야자잎 바나나잎등으로 완벽하게 위장되어 있었고 내부에는 네 명이 충분히 앉을 수 있는 벤치를 갖추고 있었다. 엘리아킴은 하이드에 가까운 곳에 도착하면 그의 마셰티(정말이지 쓸모 많은 정글도)로 야자수 잎이나 잎이 무성한 나무가지 몇 개를 베었고 매번 위장을 보완했다. 그들의 규칙인 듯했다.  하이드가 정말 좋다고 감탄하자 얼마 전에 자기 혼자서 만든 것이라고 했다. 어느 다큐멘터리에선가 파푸아 원주민들이 정글에서 마셰티 한 자루로 임시가옥을 만드는 기술을 소개하기도 했지만 엘리아킴은 그 파푸안들 중에서도 뛰어난 재주를 가진 듯했다.  일 주일 동안 아르팍산에 머무는 동안 그는 나를 옆에 세워 둔 채 세 개의 하이드를 만들었다. 두 개는 의자가 없는 임시용도였고 하나는 내부에 벤치를 갖춘 오래 사용할 하이드였다. 지붕이 있는 임시용 하이드를 만드는 데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고, 직육면체의 2,3인용 트레일러형 하이드는 30분 이내로 끝냈다. 그는 다만 마셰티 한 자루를 쥐고 있을 뿐이었데 정글에는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었다.  하이드 안에 들어간 우리는 숨을 죽인 채 새가 오기를 기다렸다. 촬영용도로 만든 구멍을 통해 본 디스플레이 무대는 고운 모래와 부드러운 이끼가 가볍게 깔린듯 보였는데 그 정갈함과 아늑함이란 보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그런 것이었다. 나는 렌즈를 이리 저리 조정하여 안정되게 올려놓고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파로티아의 콜이 지척에서 들려왔지만 새는 쉽사리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가만히 듣고있던 엘리아킴이 말했다. "지금 이 하이드는 액티브하지 않은 것 같다. 새가 저 바로 위의 장소에서 디스플레이를 하고 있다." 우리는 서둘러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 불과 오륙십 미터 떨어진 곳이었다. 문득 엘리아킴이 한 나무 위를 가리켰다. 검은색 빛나는 새 한마리가 우리를 보고 있었다.  웨스턴 파로티아였다. 꽤 멀었지만 새는 의외로 컸고 다른 새에게서는 찾기 힘든 신비로운 분위기도 그대로 느껴졌다.  움직일 때 마다 이마와 가슴팍의 장식비늘이 반짝였다. 나를 그 자리에 세워두고 엘리아킴은 재빠른 손놀림으로 하이드를 만들기 시작했다. 5분남짓 만에 지붕을 갖춘 하이드를 만든 그는 V가 있는 나무가지를 잘라와서 카메라 거치대까지 만들어주고는 렌즈를 가리는 장애물도 순식간에 정리했다.  내가 새를 기다리는 동안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자기는 이전 하이드에 가 있겠다고 했다. 배수의 진이었다.  그가 이동하고 나자 마자 커다란 소리의 콜과 함께 불과 6,7미터 거리의  횃대에 검은색 커다란 새 한마리가 툭 떨어져 내렸다. ' 어떻게 저런 황홀한 검정일 수가 있는가!' 나는 속으로 부르짖었다. 새는 그라운드로 훌쩍 뛰어 내렸다. 그러나 내 시야에는 없었다. 나에게는 보이지 않는 지점에서 그 요정의 춤을 추고 있는 것이었다. 셔터를 누를 타이밍을 찾아야 했다. 정신없이 디스플레이를 할 때라야 셔터를 누를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새가 한 번 디스플레이를 마친 상황이었기에 그가 다시 횃대 위에 오르는 순간을 노리기로 했다.  예상대로 파로티아는 다시 횃대 위에 나타났다. 앵글 안에서 어떻게 보이는지 가늠해 볼 겨를도 없이 셔터를 눌렀다. 새가 날아가지는 않았지만 조금만 이동을 해도 나무에 가려서 보이지 않았다.  허둥대는 사이 새는 훌쩍 떠나 버렸다. 하지만 이제 여행의 시작이었다. 시간은 충분히 남아 있고 나는 파푸아의 아르팍 산으로 와서 천국의 새들을 이미 만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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