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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꼬대

ID찾기, 넓적부리도요 찾기 ,Spoon-billed Sandpiper, 15cm

by plover 2008. 3. 21.

열아홉이나 스물에도 정체성에 대한 무슨 생각이 별로 없었다. 그럴 때 사르트르의 구토를 읽었다. 알쏭달쏭했다. 하지만 강렬했다.  좋아하는 작가를 이해하는 척이라도 해야할 것 같아서 헛구역질이라도 해 보려고 했다.  이후로 줄곧 그가 겪은 구토증을 경험하고 싶은 욕구에 시달려 왔다. 지난 가을, 유부도에서 흡사한 증상을 느끼게 될 줄은 몰랐다.
 
 

세상에는 하염없는 바다가 있고

 
무수한 새들이 있고, 그 속에는 또한 그 만큼의 내가 있다

 
그 많은 나는 있는 듯 없는 듯 혹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딴전을 부리며 살고 있다

 
언제인지도 모르게 파도에 밀려와 로깡땡의 발앞에 놓인 조약돌 하나
무수한 새들 중 하필 내 앞에, 아주 조금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 한 마리의 새 


 
무수하게 많다고 거듭 호들갑을 떨어도 좋을 민물도요들 틈 속에 넓적부리도요 한 마리가 있었다
소리를 질렀다.  환희와 알림이었다

 
뜻밖에도 안에서도 소리가 들렸다.   '찾았다, 로깡땡의 조약돌.'
힘없는 외침이었다,  모래를 움켜쥔 듯한 ...

허무함 ,나른함, 권태로움, 포기의 감정들이 스멀거리고 있었다

 
역시 그는 이내 눈앞에서 사라졌다. 영원일지도 모른다. 그가 민물도요와 조금 다르다고 해서 다른 것이 무엇일까? 나의 다름이라는 것. 타인은 다 알지만 나만 모르는 시시한 것들의 무수함은 아닐까?  봄꽃 곁에  오롯하게 앉은 새 한 마리 같은  상처에 소금이라도 흩뿌렸을 때의 반응 같은 ,그런 실존은 불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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