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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rds of West Papua/Papua 2016 June

Black Sicklebill, 110cm (endemic)

by plover 2016. 8. 11.








female






















혜성처럼 꼬리를 끌며 내 앞을 날아간 새가 부러진 팜 그루터기에 앉았다. 

망설임없이 디스플레이를 시작하려고 했다.

완벽한 위치였다.

그것을 모르는 엘리아킴의 친구가 반대 편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나의 안타까운 손짓은 헛수고였고 소리를 지를 수도 없었다.

어지러운 한 컷을 남기고 새는 긴 리본을 휘날리며 바람처럼 날아갔다.  







아르팍에서 느릿 느릿 길을 만들며 가는 달팽이를 보았네


본질에 대하여는 아직 아무 것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렇게 하염없이 흘러가는 길에서 삶 또는 인생이라는 것의 조건 혹은 그것이 늘 지향하는 바 행복과 만족에 대한 원초적인 지불수단 같은 것들을 불현듯 맞닥뜨리곤 한다. 님보크랑에서는 모르고 있었다. 더위와 모기 때문에 힘이 좀 들긴했지만 자초한 노고였으니 문제가 될 것은 없었고 막상 공항에서 그 lowland를 온전히 떠나고자 할 때는 오히려 다시 돌아가고 싶은 향수가 슬며시 일어나기도 했으니까. 그리고 마침내 목적지 시요브리 마을하고도 Zeth의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하여 차에서 내려서니 그곳의 모든 것은 쾌적하고 아름다웠다.  먼 곳에 다다른 나그네의 헤픈 감상이 한몫을 했겠지만 또한 평화로웠다. 하지만 내일 오후에는 아르팍의 고산지역 캠프로 가는 것이 좋겠다고 하는 시타의 말을 듣는 순간 나른한 피로가 몸을 휩싸는 듯했고 경사가 급해 보이는 산길을 두시간 이상 걷는 일은 지금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인식이 어퍼컷처럼 들어왔다.  회복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안에서 들렸다. 이어서 '만약 내가 저 산을 오를 수 없다면?' 하는 질문이 커다란 그림자처럼 덮쳐왔다. 두 발로 걷는 것의 아름다움이란 말이 필요없는 것이지만 그것을 몸소 삶의 조건이나 수단에 올려 본 일이란 없었던 것이다. 혈기왕성한 어떤 청년에게 세상의 산들의 높이란 아름다움과 가치의 높이와 동격일 뿐인 것처럼. 크고 분명한 소리가 들렸다. '꿈이란, 방랑자의 꿈이란 걸음에 깃들어 있었구나. 두 발로 걸을 수 없다면, 저 산을 오를 수 없다면 천상의 새 아스트라피아도 블랙 식클빌도 나에게는 의미가 없는 존재가 되는구나.'  나는 조금 서글퍼졌다. 비록 아직 회복할 시간이 남아 있고 또한 전투적으로 덤빈다면 못오를 일도 아니지만 잘 걸을 수 있는 능력에 비례 혹은 반비례로 꿈과 만족과 행복의 크기가 달라짐을 절감하며 느끼는 서글픔이었다.

 

밍그레를 다녀오니 마침 게스트하우스에 방이 나와 있었다. 내가 그의 집에서 계속 머물렀으면 하는 엘리아킴의 바램을 느낄 수 있었지만 아르팍을 찾은 버더들이 필요로하는 것들을 비교적 잘 갖추고 있는 Zeth's guesthouse 로의 입성을 망설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큼직한 방, 탄탄한 나무침상, 계곡의 물이 콸콸 유입되는 화장실을 겸한 샤워실, 편리한 충전 콘센트 거기다 각각의 방에는 꽤 촉수가 높은 전등도 하나씩 달려 있었다(엘리아킴의 집에는 내부를 통틀어 조그만 전등 하나가 있었다). 그리고 나는 마침내 요리사를 바꿀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엘리아킴은 그의 와이프가 계속해서 요리를 담당할 수 있다고 말했지만 하루에 세 번씩 먼길을 와서 요리를 하는 것은 힘든 일이니 그곳에 상주하다시피 하는 제쓰의 어머니(요리솜씨가 훌륭하다)에게 부탁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서운한 티를 조금 비치기는 했지만 그때부터 나의 요리사는 제쓰의 어머니가 되었다.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하여 짐을 정리하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샤워였다. 오후가 되면 차가운 안개가 몰려와 사뭇 서늘해지는 아르팍이지만 이곳에 도착한 뒤로 제대로 된 샤워를 해본 적이 없는 나는 흘러 넘치는 맑고 차가운 물을 보고는 유혹을 이길 수가 없었다. 물은 생각보다 더 차가웠다. 오싹 한기가 느껴졌지만 씩씩하게 차가운 물을 퍼부으며 샤워를 마쳤다. 날아갈 듯한 상쾌함에 더불어 고품격의 생활을 만난 즐거움은 컸다.  맛있는 저녁을 먹고 한층 세련된 커피를 마시며 남은 일정에 대한 계획을 짰다. 내일 이른 아침에는 매그니피선트 밥을 다시 보고 점심을 먹은 후 아르팍 캠프로 가서 2박 3일을 보내고 돌아온다는 것이 골자였다. 내일을 위하여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바람이 잘 통하는 나무집은 시원하지만 차가운 안개를 집안으로 끌어들이기도 한다. 한밤중에 으슬 으슬한 한기에 몇 번인가 잠이 깨었다. 언제 부터인지 목이 따끔거리고 몸에 열감이 있었다. 새벽 이슬을 헤치고 매그니피선트 밥의 하이드를 다녀온 뒤에는 해열제를 먹어야 했다. 어제 오후의 차가운 샤워와 간밤의 서늘한 안개가 남긴 열감기인 듯했다. 엘리아킴은 산속캠프의 밤은 더욱 춥다며 겁을 주었다. 나 또한 이런 상태로 산을 오르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계획을 수정했다, 오후에 가까운 곳에 있는 웨스턴 파로티아 하이드를 다녀와서 게스트 하우스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으로 . 

 

컴퓨터나 책상 앞에 앉아서 BOP들의 그림을 보거나 자료를 뒤적일 때 그들을 만나는 것은 정말 천국의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아득히 멀게 느껴졌다. 곳곳에 오해와 과장이 숨어 있었던 탓이다. 과연 그 이상하게 부풀려진 사실들의 틈을 비집고 들어와 이미 꽤 여러 종의 극락조들을 만났다. 그러나 나는 아직 아르팍에 이르지 못하고 있었다. 거의 언제나라고 해야 할만큼 산의 정상부는 안개에 가려져 있었고 나는 중턱 쯤에 자리한 아늑한 베이스캠프에서 그리움의 나날이나 보내고 있었다. 산은 높고 나는 조금 아팠다. 60년에 가까운 여정에서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혹은 보았지만 제대로 느낄 수 없었거나 개연성을 실감하지 못했던 어떤 것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달팽이의 흔적 같았다. 내가 끌고 온 궤적이 영화를 보는 것처럼 선명하게 보이는가 하면 남아있는 미완의 궤적 또한 제법 또렷하게 드러나 보였다. '삶이란, 인생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은 깊이 있게도 슬프게도 느껴지지만 회한의 편린일 뿐, 사실은 우스운 넋두리이거나 변명의 다른 표현일 뿐인 것처럼 보이는 어떤 명징함이었다.  달팽이가 남긴 트랙처럼 선연한 흔적에 더불어 삶은 지극히 분명한 길이를 가지고 있었다. 수십 년의 시간이 너무 길게 생각되어서 혹은 남은 여백이 얼마인지 가늠할 수 없어서 마치 영원히 계속될 것같은 미망에 빠지곤 하지만 그것은 잘라놓은 나무의 한 토막처럼 앞뒤가 깍둑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수많은 쓸모없는 껍질에 뒤덮이고 이미 폐기된 거미줄에 친친 감긴 나의 나무토막이 보였다. 나의 달팽이 궤적은 고통스러운 회한에 사로잡힐 만한 것들로 가득 차있는 듯 했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 사람인지,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 그래서 어떻게 사랑하며 살아가야 하는 사람인지를 일깨워 가는 고통스러운 과정으로도 보였다  이상한 일이지만  처음으로 쉬워 보였다.  지나온 궤적을 수정하거나 지울 수 있는 지우개 같은 것이 우리에게는 없다. 그러나 자신에게 물어볼 수는 있고 또 그래야만 하지 않겠는가. "왜 지우고 싶으며 어떻게 수정하고 싶은가?"  스스로에게 진정으로 솔직해야만 한다는 조건이 무겁고 두렵기는 하지만 미완의 짧은 궤적은 원하는 대로 그어가면 될 일이었다. 후회도 회한도 이미 폐기된 거미줄일 뿐이므로.

 

 제쓰가 만들었다는 오두막 같은 큼직한 하이드에서 웨스턴 파로티아의 춤을 지켜보았다. 셔터음 때문에 반 토막 난 공연이었지만 신비로웠다. 신비롭다는 말과는 어울리지 않게 또한 웃지 않을 수 없는 귀엽고 앙증맞은 춤이었다. 영상으로도 얼마든지 그들의 춤사위를 볼 수 있다지만 라이브 무대의 감흥은 박제에 다르지 않은 영상의 그것과 비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숙소로 돌아오는 내리막길이 그토록 무더웠던 것은 열 때문이었다. 내가 가진 해열제의 효력이 약한 것 같다고 했더니 캐나다에서 온 일레인 선생( 파푸안 부족의 공동체생활을 연구하며 게스트하우스에서 한 달동안 머무르고 있었다)이 500mg 타이레놀을 나누어 주었다. 친절하고 밝은 성품의 부인이었다. 점심과 저녁 식사시간이 같아서 나는 BOP에 대해서 그녀는 시요브리 사람들에 대해서 수다를 주고받을 기회가 많았다. 강력한 약 덕분에 열을 누를 수 있었지만 또한 가이드 엘리아킴에게 혹시 이번에 아르팍으로 가지 못한다고 해도 다시 기회가 있을 것이므로 괜찮다고 말해 두긴 하였지만 식은 땀을 흘리며 잠든 사이에도 의식은 아르팍으로 향하고 있었다. 힘차게 걸어야 하는 것도 나에게는 중요했다. 문득  아스트리피아와 블랙 식클빌의 디스플레이 시작 시간도 05:30이라고 했던 가이드의 말이 떠올랐다 갑자기 환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마침내 나는 아르팍캠프의 통상적인 탐조패턴을 완전히 무시하는 듯한  아이디어를 제안하기에 이르렀다,  그에 앞서 엘리아킴에게 야간산행이 가능한지를 먼저 물어보았다. 그는 어렵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 우리가 새벽 두 시에 출발하면 통상 두 시간이 걸리는 길이지만 체력을 아껴 천천히 걷는다고 해도 다섯 시 쯤에는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추운 캠프에서 밤을 보낸 것과 다름없이 새를 볼 수 있지 않겠는가?" 고맙게도 그는 그것이 가능하다며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여 주었다. 다음 날 새벽 한 시 반에 엘리아킴은 친구 한명을 데리고 나타났다. 미리 언급한 바는 없었지만 등반 도중에 아직 아파 보이는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면 도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배려였다. 나의 가이드는 언제나 젠틀하고 사려깊었다. 셋은 캄캄한 정글길을 손전등에 의지하여 두 시간 여 만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다소 과장된 마음가짐 때문이었는지 등반은 그리 힘들지 않았다. 산속 캠프에서도 이미 기상과 준비의 불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우리는 또 다른 캠프로 이어지는 길 어딘가에서 Zeth 일행을 만났다. 그는 모든 하이드와 관찰이 용이한 장소에는 빠짐없이 BBC에서 카메라를 설치했기 때문에 하이드는 사용할 수 없다고 하면서 최근 블랙 식클빌이 잘 나타나는 몇몇 지점을 상세히 알려주었다. 해발 2500미터가 넘는 곳이라 여명이 오는가 싶었는데 어느새 사위는 훤하게 밝아 있었다. 


찾기 시작한지 오래지 않아 섬광이 튀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우리는 빠른 걸음으로 소리가 나는 곳으로 돌진했다. 경사지 한 지점에서 가이드는 수직으로 쭉 뻗어 오른 높은 나무를 가르켰다.  거대한 검은 새 한마리가 긴 꼬리를 흔들며 밝아오는 동쪽하늘을 향해 마음 서늘해지는 두 음절의 마찰음을 내뿜고 있었다. 장엄하고도 기괴했다. 상상과 기대를 넘어버린 압도적인 비주얼에 이 새가 사진으로 본 그 블랙 식클빌이 맞나 싶은 생각도 스쳤다. 어리석음과 게으름을 꾸짖는 듯한 칼날같은 새소리를 들으며 생각했을 것이다. '나의 이 여행이란 얼마나 온당한 것인가,  내가 모르는 어느 곳에는 내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무시무시한 생명체가 반드시 존재한다니 세상은 참으로 경이롭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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