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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꼬대

솔개는...

by plover 2008. 10. 18.

 

 

 

이름봐라.

솔개.

소리개.

무슨 뜻을 담고 있을까?

어감에 있어서는 맹금류 다운 사나움이나 날카로움이 없다.

 

 

 


 

 


 

다복솔 뭉게 뭉게 널린 야산 구릉 위로 바람을 타고 천천히 커다란 새가 나타나면

할머니는 구구구하는 소리와 함께 좁쌀을 뿌리며 병아리를 불러모았다.

어미닭과 함께 병아리들이 노랗게 모여들면 큼직한 대바구니로 살며시 덮어 버렸다.

그 안은 참 아늑했을 것이다.

그 속에 갇혀 보고 싶었다.

영문도 모르는 채 그래야 할 것 같아서 커다랗고 느릿한 그 새를 무서워 했다.

병아리를 낚아채고

심지어 밭두렁에 재워놓은 아기를 보자기 채 물고 갔다는 이야기를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들었지만,

사람 사는 집 마당까지 내려와서 무엇이든 가져 가려는 시도를 하는 소리개를 본 일이란 없었다.

내가 못 봤다고, 내가 안 믿는다고 하느님이 없을까만.

 

 

 




 


 

실은 그 외양에 걸맞을 만한 일을 한 번 쯤 보고싶다.

 

 

 


 

 

 

고전에 널리 인용된다고

머나먼 예부터 전해내려온다고 모두 진실은 아니더라.

악의 없는 혹세무민이 흔하기도 하더라.

어두운 숲, 깊은 골짝마다 신화가 안개처럼 피어나던 시대야 말로

자라보고 놀라고 집에 들어와서는 자라 등짝을 닮은 솥두껑 보고 가슴을 쓸어 내리더라는 식의

과장, 와전, 왜곡된 정보가 홍수를 이루었을 것이다.

천일야화중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의 궤를 좇다 보면

거대하고 무시무시한 독수리가 나온다.

그 뿐일까?

새를 본다고 천방지축하기 전 까지만해도 독수리는 가장 크고 무서운 새였다.

노란 병아리와 예쁜 아기를 가져가는 소리개는 무섭고 비겁한 새였고.

 

 

 




 

 

 

그렇지만 옛사람들의 독수리는 하나만 맞다 ,가장 큰 새.

그러면 가장 무서운 새는 어디로 갔을까?

알 수 없는 노릇.

허나 곁가지를 조금 쳐보면 검독수리가 있다.

내가 아는 한 가장 사납고 무서운 새다.

지난 겨울 천수만의 기러기 사냥件은 차라리 가쉽꺼리에 불과한 것이 검독수리 Golden Eagle의 진실이다.

안데스 산맥이던가 어디였던가?

크고 날렵한 산양이 벼랑을 타고 갈 때

검독수리는 자기 몸의 몇 배는 될 산양의 등짝을 날카로운 발톱으로 찍어서 벼랑가로 몰았다.

그것으로 사냥은 끝이었다.

놀라고 아픈 산양은 백길 천길 낭떠러지로 공처럼 퉁겨가며 끝없이 끝없이 떨어져 내렸다.

오 얄궂은 생명들의 배고픔이여 , 장난질이여.

검독수리가 그 거대한 독수리라면 아귀가 맞는 옛이야기이겠으나.

아닐 것이다.

 

 

 

 

 

사람들은 특히 어린이와 그리고 아이같이 순진무구한 어른들 조차도 큰 것을 숭배한다.

그 큰 것이 멋있는 무기를 가지고 있다면 당장 신격화 될 것이었다.

조그만 동네,  야트막한 야산을 빙빙 도는 소리개는 가장 큰 새였고

날카로운 발톱, 형형한 눈, 어른 키만한 날개는 멋있는 무기였다.

전설은 그렇게 태어나지 않았을까?

 

 


 

 

 

솔개는 어떤 새일까?

조류학자가 할 이야기지만

그 동안 보아 온 소리개는 먼저 느릿한 만큼 순한 새라는 것이다.

둘 또는 셋 넷, 심지어 쉰 내외의 솔개들이 무리지어 일정한 공간 안에서 먹이를 구하든지 머무르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평화를 곧 생활의 미덕으로 삼으며 산다는 다른 상징일 것이다.

큼직한 날개를 활짝 펼치고 바람을 타거나 희롱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보노라면 부럽기 그지없다.

피에르 쌍소가 그렇게 "느림"을 찬했지만 솔개의 정지에 가까운 느림, 정녕 아름다운 그 모습을 보았어야 했다.

그래서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느려서 아름다운 것의 실체가 저기 있소" 하고.

 

 



 

 

 


이 맹금을 보라.

시속 400 킬로미터로 내리 꽂으며

저 보다 더 날렵한 쇠제비갈매기를 공중에서 납치한다.

순한 새가 공포에 질려 기어이 제 아귀에 걸려들게 하는 새.

매의 눈에는 언제나 살기가 번득인다.

제 발가락보다 길고 낚시바늘처럼 날카로운 발톱은 새들의 피로 마르지 않는다.

부메랑같은 날개 조차도 벨듯이 서슬이 푸르다.

솔개는 어떨까?

눈은 형형하나 살기라고는 없으며 오히려 초식 동물의 순함을 담고 있다.

발과 발톱은 ?

커다란 덩치에 그 조막 닭발과 가느다란 발톱 이라니!

게을러 보이는 발가락 위의 주름은 또 뭔가?

그들이 무슨 사냥을 하던가?

하지만 날개는?

오 부드럽고 품새 넉넉하며 우아하고 강인한 Black Kite.

 

 

 


 

 

 

솔개가 맹수인 것은 전설의 범위 안이다.

쓰레기 주워들고 신명내며 날아가는 커다란 새.

마른 생선 조각 하나면 한 끼 식사로 넉넉해하는 소박하고 순하고 푸근한 새.

존재감 큼직한 새.

하지만

가끔 독수리의 진면목을 아이들에게 설명 하다가

재미없을 뿐 아니라 김 빠진 이야기를 어수룩하게 하고 있음을 느끼고는 실소하곤 한다.

할머니의 커다란 대바구니 속에 들어 갈 일을 잃어버림,

숲속에 어둠이 내리면 낮에는 없던 온갖 무서운 사물들이 뒤섞여 장터를 이루는 신화의 스러짐,

그리고 잃어버린 나의 솔개 때문이다.

애교 섞인 혹세무민, 악의 없는 거짓, 마을 앞 숲이 세상에서 가장 음침한 곳이 되고

뒷 야산이 도깨비와 간특한 여우로 우글거리는 신화의 정원이 차라리 그리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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