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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꼬대

Black-capped Babbler, 15-17cm

by plover 2023. 2. 21.

미소가 통하지 않는다면 거들떠보지 말 것, 그는 위험해
 
우리는 왜 낯선 곳에서 마주치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는 것일까?  이런저런 대답들  중에 잘못된 답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딱히 하나의 답을 찾아야 한다면?  이렇게 제안하고 싶다. "호젓하고 아름다운 길을 천천히 걸어가는 나와, 마주 오는 또 다른 나그네가 미소는커녕 시선도 주지 않고 비켜가는 상황을 상상해 보기."  대번에 등이 허전해져 올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나와 그가 날린 미소에 담긴 선량함의 함량만큼 둘은 안정감과 행복감을 느끼는 것이다.  내가 평화를 사랑하는 안전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미소에 실어 보내는 기술이 웃음의 품질이 된다.  이런 일은 사람 사이에서만 일어나지는 않는다. 사람과 동물, 사람과 숲 속의 새에게서도 꼭 같이 벌어진다.  "사회(society)"는  "소통(communication)"과 동의어라고 해도 포함관계라고 해도 서로 의지하는 어휘라고 해도 좋을 만하다. 소통의 단초는 부름(call)이고, 그 시작은 응답 (respond)이다.  나의 부름에는 물론 , 나의 부름을 예상하여 미리 응답하는 이들을 우리는 친구 혹은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부른다.

보르네오의 어느 숲, 이킹이 새의 노래를 들려주자 언덕 너머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응답하던 새는 어느새  동굴 속 같이 어둡고 축축한 정글의 쓰러진 나무들을 지나 커다란 잎사귀 뒤로 다가왔다.  그 틈새를 통해 밝고 커다란 눈으로 그의 미소를 읽었다. Iking의 표정은 밝고 온화하다.  새는 노래하기와 먹기를 반복하다가 온몸이 노출되는 그루터기 위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눈이 몇 개이며 카메라가 몇 대인지 빤히 알고 있지만 깃을 다듬기 시작한다. 완전한 무장해제를 알려오는 것이다. 머리를 깃에 파묻거나 날개로 눈을 가리기도 하면서 무아지경에 빠진다. 어두운 숲 속의 별 같고 꽃 같은 요정의 춤이다.

우리의 미소는 터무니 없이 헤퍼져야 하고 소통의 지평은 응당 무한대로 넓혀야 한다. 한 마리의 배블러는 한 명의 인간에 맞서 있다. 당연하다. 생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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