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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꼬대

Short-tailed Babbler, 12.5-14.5cm

by plover 2023. 2. 27.

어둡고 고요한 숲  속에서 가슴팍이 하얀 작은 새를 만난다는 것은
 
Iking은 배블러 같은 은둔형의 새를 더 보고 싶어 하는 우리의 속마음을 읽었음이 틀림없다. 그는 말없이 트레일을 벗어나 길의 흔적도 보이지 않는 숲 속을 자신만이 아는 어느 지점을 향해 성큼성큼 나아갔다. 우리는 조용히 뒤를 따랐다.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숲은 조금씩 더 어두워지고 있었다. 마침내 작은 계곡 앞에서 멈춘 그는 우리에게 서있는 자리에서 기다릴 것을 주문했다. 여느 하이드와는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허술한 가림막은 물론 누군가 딛고 다진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몸을 가릴 곳이 없어서 엉거주춤한 우리와는 달리 Iking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예사로이 파랗게 이끼가 뒤덮인 나뭇등걸 위에 밀웜을 두고 우리 옆으로 왔다. 새의 노래를 울렸다. 잠시 뒤 그가 속삭였다. "나의 친구들이 오고 있다." 어둑하고 고요한 숲 속에서 들려온 그의 속삭임의 파동은 이상했다. 귀보다는 더 안쪽으로 곧장 파고들어 왔다. 내 안에서는 순식간에 새가 아닌 어여쁜 친구를 맞을 준비가 이루어졌다. 숨을 죽인 몇 초... 누군가가 나타났다. 둘이었다. 탄식이 흘러나왔다. '아 저 창백한 아름다움이라니...'

언제나 그렇듯 환희와 희열은 나른한 상실감과 모호한 슬픔을 또한 만들고 만다. 완벽하게 조화로운 무대, 어두운 조명, 하얗고 가늘고 긴 다리를 가진 동그마한 새들. 소의 눈을 더 이상 바라보지 못한 지 오래되었다. 그 깊은 우물 같은 검고 맑은 눈을 앞으로도 영영 보지 못할 것이다. 쌍꺼풀 또렷한 길고 촘촘한 속눈썹을 가진 반짝이는 돼지의 눈도 보지 않는다. 영혼이 보일 것 같아서이다. 그들이 갇힌 곳을 애써 눈을 돌린 채 지나며 속으로만 운다. 찌질하고 비루한 나의 위선을 느끼며 또 운다. 나는 아마도 이들의 비현실적인 존재감에, 해가 다르게 그러다가 달이 다르게 이제는 하루가 다르게 줄어들어 간신히 초승달만큼만 남은 보르네오의 정글을 보며 삼켜오던 감정을 눈앞에 좀 흘려내었던 모양이다. 환희는 또한 슬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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