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밑에 이르자 오솔길을 따라오며 비추던 랜턴들을 모두 끈다.
후덥하고 농밀한 공기, 눈 앞에 시커먼 먹물 커턴이 훅 내려온다.
바로 곁에 서 있는 사람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손을 눈 높이에서 흔들어 보지만 그냥 어둠만 보인다.
야맹증에라도 걸렸나 싶은 생각이 들지만 곧 이어 '아, 이 어둠...아주 옛날 어린 소년이 밤중에 일어나 뒷간을 찾아 갈 때도 이랬어...' 그리고 무수한 반딧불이와 하늘의 은하수.
순정한 밤이다.
비로소 사물들이 서로 안부를 묻고 두런 두런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 같다.
별 하나와 반딧불이 하나가 다르지 않고
새와 사람과 나무가 한 덩어리 같고
어둠에서도 생명의 기운이 퍼져나온다.
할마헤라 섬 웨다의 밤.
2015,07
HALMAHERA, INDONE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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