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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꼬대

호수

by plover 2012. 2. 4.

 

 

네팔에 가기 전부터 '포카라' 라는 이름이 좋았습니다. '포카라'를 발음해 보면 산과 하늘의 혹은 물의

맑은 기운 같은 것이느껴지고 그 속에 행복한 노래결도 섞여 있는 듯하지 않습니까? 버스를 타고

일곱시간 반 동안 협곡과 강을 따라 달려가니 마침내 이정표가 나옵니다. "Paradise Pokhara 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라는 문구와 함께 말입니다. 이 보다 더 멋진 환영 인사가 있겠는지요.

표지판은 군데군데 칠이 벗겨져 어수룩하지만 Paradise 와 Pokhara가 함께 적혀 있으니 예쁘기만 합니다.

이름에서 가졌던 느낌을 환히 보여 주는 듯해서 더 좋습니다. 그런데 포카라는 뜻밖에도 큰 도시였군요.

오는 길 내내 말동무가 되어 준 옆자리의 Khim 에게 묻습니다. 포카라가 혹시 네팔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냐고. 그렇다 하는군요. 나는 작은 마을 또는 아담한 읍 정도를 상상했음을 고백합니다.

맞선을 보러 나가면서 상대방이 이러 저러하게 멋있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과 꼭 같군요.

그도 웃습니다. 잘 웃고 겸손하고 젊은 Khim은 놀랍게도 포카라에서 사흘을 묵을 호텔의 주인이 됩니다.

포카라에 내립니다. 1월이 4월 같습니다. 건기라 바람이 불면 먼지가 좀 이는 것 말고는 쾌적난만입니다.

기대했던 것 보다 예쁘고 깔끔한 숙소에 서둘러 여장을 풀고 호수로 나갑니다. '호수는 과연 가을 하늘

빛일까, 눈덮인 히말라야 영봉들을 수면에 드리우고 있을까? 그 충격을 어떻게 감당하지? 호수 주변에

새는 많을까?' 즐거운 상상을 하며 Phewa 에 도착합니다. 넓고 큰 저수지, 물은 맑으나 녹색이 조금 섞인

여느 여름철 저수지의 그것입니다. 호수를 에워싸고 있는 그리 높지 않은 산에는 높은 곳 낮은 곳 상관

하지 않고 사람의집들이 깃들어 있습니다. 평화롭고 고적한 분위기 입니다.

그런데 히말라야 봉우리들의 파노라마는 어디서 볼 수 있는 것일까요? 페와 호수에 왔건만 동서남북

어디를 보아도 눈 덮인 하얀 봉우리는 보이지 않습니다. 호수 반대편이나 아득한 저 끝으로 가면 보이는

것일까요? 어딘 가로 더 가야 한다면 하는 수 없는 일, 새들을 좇습니다. 숱한 솔개와

더 많은 House Crow와 호수 위를 날아다니는 무수한 제비들, 큰 무리를 이루고 이리 저리 움직이는

Common Myna 들이 마구 눈에 들어옵니다. 거의 모든 새들이 가깝습니다. 둘 째 날의 해가 저물고

있습니다. 여행은 멀리 갈수록 더 깊어지는 바다 같습니다. 외로움과 그리움은 언제나 함께 깊어 갑니다.

 

 


 

 


 

 

 

 

 

 

 

 

 

 

 

 


 

 

늦봄 같은 1월의 포카라 , 밤이 되면 아니 해가 지기 시작하면 슬며시 도시로 내려오는 히말라야 설산의

냉기류로 늦가을 같은쌀쌀함에 휩싸입니다. 옷깃을 여미며 음식점과 쇼핑몰이 모여 있는 거리를

이리 저리 다니며 마음에 드는 곳을 찾아봅니다. ‘부메랑’ 이 자꾸 눈에 들어오는군요. 조금 진부하기도 한

타이틀이지만 정말로 거듭 들르고 싶을 만큼 매력적인 음식점일지도 모른다는 은근한 기대가 생기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렇듯 이름은 중요한 것인가 봅니다.

정전입니다. 식탁 위에는 한 송이의 꽃과 한 송이의 불꽃이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아직 소녀티가 남아 있는 웨이터리스가 다가옵니다. 나그네가 생소한 메뉴로 어눌한 긴 주문을 하는 내내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사흘을 머문 포카라에서 네 차례 만나게 되는 구룽은 마지막 방문에서 언제 다시

포카라로 돌아오느냐고 물었고 나는 그녀가 눈물을 감추느라 애쓰는 모습을 보아야 했습니다.

비가 내립니다. 휘젓듯이 바람도 붑니다. 뜻밖의 기상이 놀랄 일은 아니지만 오후 내내 맑았기에 역시

산의 나라에 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후드재킷을 여며 입고 비를 맞으며 어두운 골목길을 더듬어

숙소로 돌아옵니다.

네팔 중에서도 사철 온난한 곳 포카라에서는 난방을 하지 않는다 하는군요.

선배 여행자들이 필수 준비물로 가볍고 따뜻한침낭을 강추한 것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긴 내의와 양말을

입고 신은 후 침낭으로 몸을 에워싸고 이불을 덮으면 기분 좋은 온기와 포근함 속에서 깊고 푸른 잠이

가능해집니다. 갈 길이 먼 나그네의 여독은 마취 성분이 강한가 봅니다. 여명이 커튼을 슬며시 흔들

때에야 잠에서 깨어납니다. 흔히 낯선 곳에서는 첫 밤을 잠 못 이루곤 했던것과는 사뭇 다릅니다.

살아오는 날 동안 몇 번이나 잊을 수 없는 특별한 아침들을 맞아 보셨는지요?

등산과 낚시에 깊이 빠져 지낸 기간이 제법 길었고 역마살에 떠밀려 열린 곳에서 밤을 새운 날도 적지

않아 여러 아름다운 새벽과 눈부신 아침들을 보았습니다. 어쩌면 세상의 모든 아침은 순결하며

아름답다고 크게 노래 불러도 무어 잘못될 일이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곳에서의 첫 아침은 영원히

지워지지도 바래지도 않을 특별한 뚜렷함을 남기는군요. 간밤의 난데없는 비로 오늘은 아주 청명한 날이

되리라는 기대가 있었는데 과연 공기와 빛의 투명도가 어제와는 사뭇 다릅니다. 밝은 빛은 새로운 만남을 주선하는 법이지요.

숙소를 벗어나 호수를 향해 길을 서두릅니다. 호수 안의 작은 섬으로 배를 타고 가 볼 요량이었습니다.

그런데 등 뒤에서 무엇인가가 부르는 듯 당기는 듯한 느낌이 있어 고개를 돌립니다. 아, 기괴하고 거대한

빛의 덩어리. 어제 몇 차례나 골목을 왕래하는 동안에도 보이지 않던 히말라야 설산이 갓 떠오르는 태양과

함께 솟아 오르고 있습니다. 투명한 오렌지 빛에 반쯤 물든 그 희고 날카롭고 웅장한 산들의 존재.

무슨 말이 필요할까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의 서주를 눈으로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제의 햇빛은 포카라에서는 절반의 빛이었던가 봅니다. 동쪽 산능선 뒤로

어디든지 설산의 파노라마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골목에서도 호수에서도 번듯하거나 초라한 지붕

위에서도...

풍경 때문에눈물을 흘려 본적이 있으신지요?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그린라인 버스를 타고 포카라를 다녀오세요.

400루피, 초록색 버스는 어떤 이에게는 그 옛날 먼지 이는비포장 시골길 완행버스일 것이며,

누군가에게는 하루를 48시간으로 늘여주는 타임머신 이었다가 지상의 어딘가에는 존재하는

자그마한 파라다이스로 인도하는 어예쁜 탈 것이 되어 줄 것입니다.

2012년 1월, 네팔, 포카라

 

 

 

 

 

 

 

 

 

 

*Nepal ,1 rupee= about 15 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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