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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부 간월재 이 어디 쯤엔가 청승맞게 앉아 있노라니 며칠 전부터 수박씨처럼 겉돌던 말들이 급기야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개개비 새, 영혼의 무게 바닷가 벼랑에서 새 한 마리가 뛰어 내린다 그 결에 작은 돌멩이 하나도 부스럭거리며 떨어진다 나는 것은 죽는 일 펠릿으로 몸을 비우고 뼈를 깎아 마음을 버리고 지금 민들레 홀씨는 바람으로 흐르지만 유성물감 샛노란 꽃 한 송이 바다에 떨어진다 날기 위해서는 죽어야 한다 날개가 있는 것은 가 볍 다 다만 한 번이라도 마음의 무게를 생각해보지 않는 것은 그가 무게추이기 때문인데 그 때문인데 墜落이 꿈이라 한다 나뭇가지에서 새 한 마리가 떨어진다 오장육부는 술로 씻고 토할 수 있다지만 곡괭이 자루 삶의 뼈는 무엇으로 안을 깎아낼까 가벼운 것들에겐 날개가 있어 날기 전에 새는 무.. 2009. 6. 24.
누가 뿔논병아리에게 춤을 가르쳤을까 벚꽃 필 무렵 현해탄 밀물타고 쿠로시오 해류 낙동강 거슬러 오르면 물위의 새들은 회음부가 간지럽다 봄강에 하늬바람 분다 부풀린 장식깃 뿔논병아리 두 마리 바람에 이는 물처럼 눈 맞을 때 물결은 4/4박자로 찰싹인다 하나 둘 셋 착 하나 둘 셋 척 하나 둘 착 척 착착 척척 아르헨티나여 이제 그만 고백해라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흐르는 라플리타강 뿔논병아리에게서 탱고를 배웠다고 어때요? 한 번도 춰 본 일이 없어요 잡아 주실꺼죠? 저만 따라 오세요. 자 갑시다 오른 쪽 먼저 바람결에 한 번 물결에 그리고 마음 가는대로 누가 뿔논병아리에게 춤을 가르쳤을까 나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희미한 웃음을 머금고 손자의 손자의 손자의 그 손자를 아리송하게 바라본다 누구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라 하고 .. 2009. 4. 26.
매화와 새 7 매화를 보러 갈 때는 화장일랑은 하지 마세요 하물며 오데코롱은 하이웨이스타를 틀어놓고 녹턴에 귀를 기울이는 것 희한하게도 그것은 오래된 정원의, 젊으신 어머니의, 시집 간 누이의, 앉은뱅이 책상의, 석유등 어두운 밤의... 기억속의 향기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 향기는 타자에의 인식의 시작이며 사랑과 죽음에 이르게 하는 힘. 2009. 3. 11.
매화와 새 3 향을 놓아 새를 부르다 이기적 관능 여리거나 순백의 것으로 감추기 꿀과 향 가득 채운 씨방 불면의 기다림 마침내 닿는 새의 촉수 꽃 파르르 떤다 흩날리는 꽃가루 떨어지는 꽃잎 이른 아침 순결한 매화의 도발 영악한 매춘 2월의 마지막 날 3월에는 죽도록 부끄러운 날은 없기를 2009. 2. 28.
갈색양진이 Rosy Finch, 16cm female male male female 2009. 1. 5.
흑두루미와 놀기 놀았다 좇커니 딸커니 멀리서나마 눈도 맞추며 저는 저 마음으로 이는 이 마음로 생각하고 물었다 누구냐 왜 왔느냐 시베리아에서 부산에서 쫓기듯 끌린 듯 누가 무엇이 부른 것이더냐 속절없이 등떠미는 뜨거운 목소리라도 들리더냐 그래 놀자 내가 시베리아로 갈 날이 없을 까닭 또한 없구나 그러니 놀자 어차피 시간에 길이란 없지 않던가 누가 조금 더 멀리서 왔다고 억울해하기 없기 매양 빗나가는 스무고개 하며 어긋난 눈길 고르는 사이 좇거나 따르는 사이 갈대꽃 씨가 시간의 파편이 되어 붉은 바람을 타고흩어지고 있었다 2008. 12. 26.
그리고 돌아와서... 아파트 보도블록 위 정원사들이 가지를 치고 고르느라 흩뿌려 놓은 솔방울들이 구르고 있다. 그 모양이 야무지고 연갈색 속내는 윤기가 난다. 촉촉하고 아주 온전한 단풍닢이라서 어쩔 수 없이 줍곤 했던 것 처럼 하나를 주워 든다. 손에 쥐고 눈으로 향하는 순간 환해진다. '하...잘도 피었네 너를 꽃이라 부르지 않는 이유가 뭐람?' 빙글 돌려서 본다. 놀란다. 수 많은 눈꺼풀과 눈. 말이 들린다. '다 피우고 연 줄 알아? 청설모가 되새가 딱새가 가장 작은 상모솔새가 차례로 저들의 체적에 맞는 틈을 찾아 나를 먹지만 그들의 입과 부리가 큰 만큼에 반비례하여 시간은 짧지 나를 봐 시간이 필요해 아주 긴 시간 수컷의 젖꼭지 같은 깡마른 심지에 가장 가까운 눈꺼풀들은 말할 수 없는 긴 시간을 예비하는 것들이지' '.. 2008. 12. 12.
추일서정을 읊조리다 하구의 청회색 얕은 바다 위를 달린다. 마지막 한 방울 기름까지 꽃과 잎으로 밀어 올리며 철사 빛으로 익고 있는 갈대밭 사이를 지난다. 그 위로 큰고니 한 가족이 천천히 내려온다. 이어서 쇠오리떼가 가랑닢처럼 우수수 일어난다. 어느 방향이든 늦은 오후의 일광을 잔뜩 머금은 채 날아갈 듯이 부풀어 오른 억새 프레임 뒤로 세상은 저 만큼 물러나 있다. 딸이 카메라를 메고 가는 아비의 뒷모습을 사진에 담는다. 앞에는 하얀 빛을 내뿜는 바다가뻗어 있다. 아이는 제 아비 앞에 펼쳐진 풍경이 이전과 다르다고 생각한다. 한 여인이 천천히 뒤따르며 온화한 표정으로 그들이 하는 양을 바라보고 있다. 어느 날 낯선 길을 지난다. 키 큰 마로니에가 길 양 옆에 우우 몰려서서 노랑 물감를 퍼붓고 있다. 차도 사람도 색에 젖는.. 2008. 11. 18.
새들의 시간 시간은 과거다. 그를 이제야 깨닫는다. 손가락 틈으로 흘러나간 모래알이 남긴 희미한 간지러움 같은 과거. 하지만 그 궤적은 때때로 단단한 모래알같이 차가운 또렷함이다. 지난 한 주 나는 그리고 당신에게 있어 시간은 무엇이었나? 새들에게 있어 그 시간은 어떤 의미였을까? 전장에 질펀한 핏물처럼 낙동강 하구 모래섬에는 시간의 궤적이 널려 있었다. 아직 붓을 들지 않은 화가 앞에 펼쳐진 캔버스같이 온전한 여백의 땅, 세가락도요, 좀도요, 흰죽지꼬마물떼새... 그들의 아찔한 가벼움이 눌러놓은 꽃잎같은 발자국조차 핏자국인 양 선연했다. 오해와 모멸, 증오와 한숨을 바둑의 포석처럼 빼곡히 놓아 온 한 주 동안 세 마리의 넓적부리도요새는 겨울을 날 곳을 찾아 떠났고 늦은 출산의 흔적을 까맣게 칠한 채 민물도요 수백 .. 2008. 10. 26.
솔개는... 이름봐라. 솔개. 소리개. 무슨 뜻을 담고 있을까? 어감에 있어서는 맹금류 다운 사나움이나 날카로움이 없다. 다복솔 뭉게 뭉게 널린 야산 구릉 위로 바람을 타고 천천히 커다란 새가 나타나면 할머니는 구구구하는 소리와 함께 좁쌀을 뿌리며 병아리를 불러모았다. 어미닭과 함께 병아리들이 노랗게 모여들면 큼직한 대바구니로 살며시 덮어 버렸다. 그 안은 참 아늑했을 것이다. 그 속에 갇혀 보고 싶었다. 영문도 모르는 채 그래야 할 것 같아서 커다랗고 느릿한 그 새를 무서워 했다. 병아리를 낚아채고 심지어 밭두렁에 재워놓은 아기를 보자기 채 물고 갔다는 이야기를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들었지만, 사람 사는 집 마당까지 내려와서 무엇이든 가져 가려는 시도를 하는 소리개를 본 일이란 없었다. 내가 못 봤다고, 내가 안.. 2008. 10. 18.
휴식과 비행 무엇이 새에게로 이끌던가? 폐선의 난간, 그물을 잇는 굵은 동아줄, 양식장의 늘어선 목책들 위에 외줄로 길게 서거나 앉아 있는 새들을 보는 느낌은 어떠하던가? 지상에서 가장 빠르게 이동하는, 날개를 가진 동물이 점점이 한 줄로 늘어서서 움직임을 멈춘 채 쉬고 있다. 가장 빠른 새의 정지란 참으로 고요하다. 왼쪽- 뒷부리도요, 가운데....-세가락도요, 오른쪽 - 붉은어깨도요 도요물떼새들의 비행에선 노래가 들린다. 그들은 매번 다른 노래를 들려준다. 푸른 바다 위를 스치듯 날아 진록의 큰 갈대밭 앞에서 일제히 흰 배와 날개를 드러내며 회전을 한다. 그리고 한결 같이 검은 등을 보이며 모로 서서 날아 본다. 이제 곧 온통 하얀 날개와 가슴들을 내밀며 모래톱 위에 그림같이 내려앉을 것이다. 귓속을 맴도는 노랫.. 2008. 9. 9.
섬에 사는 솔개 Black Kite, 58.5cm 예쁘지 않은 섬은 없다. 나무섬에 내린다. 큼직한 간출여 몇과 조그만 섬을 두셋 거느린 작지 않은 섬. 삼 년이나 사년 만에 처음으로 섬에 왔다. 섬에 오를 땐 언제나 그러하듯 가슴속에 희열 같은 것들이 가득 차 오른다. 거침없이 부는 바람, 하늘처럼 푸른 물, 회색 바위를 덮고 있는 풀과 나무 그리고 즐거운 기억의 효과다. 가파른 턱을 올라 고개를 드니 다급히 날아가는 새가 있다. 숲으로 숨는 새는 후투티다. 어설픈 날개짓과 그 감출 수 없는 깃과 색이라니... 역시 섬의 식생은 건강하다. 아열대 식물과 온대성 그것들이 적당한 비율로 풀밭과 관목숲을 이루고 있는 그 아름다움을 어떻게 표현할까? 저위도 남서해 섬의 식물들의 녹색에는 싱그러움과 더불어 수채성 투명함이 담겨있다. 방풍이 지천이다. 동백나무 .. 2008. 4. 13.
ID찾기, 넓적부리도요 찾기 ,Spoon-billed Sandpiper, 15cm 열아홉이나 스물에도 정체성에 대한 무슨 생각이 별로 없었다. 그럴 때 사르트르의 구토를 읽었다. 알쏭달쏭했다. 하지만 강렬했다. 좋아하는 작가를 이해하는 척이라도 해야할 것 같아서 헛구역질이라도 해 보려고 했다. 이후로 줄곧 그가 겪은 구토증을 경험하고 싶은 욕구에 시달려 왔다. 지난 가을, 유부도에서 흡사한 증상을 느끼게 될 줄은 몰랐다. 세상에는 하염없는 바다가 있고 무수한 새들이 있고, 그 속에는 또한 그 만큼의 내가 있다 그 많은 나는 있는 듯 없는 듯 혹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딴전을 부리며 살고 있다 언제인지도 모르게 파도에 밀려와 로깡땡의 발앞에 놓인 조약돌 하나 무수한 새들 중 하필 내 앞에, 아주 조금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 한 마리의 새 무수하게 많다고 거듭 호들갑을 떨어도 좋을 민물도요.. 2008. 3. 21.
봄날은 간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 ... ... 봄날은 간다 눈물겹지 않은가? 불러보면 뜨거운 무언가가 솟아나 고이고 듣노라면 돌아가신 누님의 하얀 목덜미 뒤로 길게 땋아 내린 댕기머리가 어른거린다 흰 버선발에 스치는 꽃분홍 한복 치맛자락 사각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꽃놀이 가는 아낙들과 어예쁜 누이들의 봄바람을 가득 담고 부풀어 오른 화사한 치마들이 빙글빙글 돌아간다 '봄날은 간다' 라고 현재형을 말하는 동안 왜 모든 것들은 과거형으로 인식되는 걸까 내게 그리고 모두에게 묻고 싶다 "당신의 봄은 안녕하십니까? " 꽃 속의 꿀처럼 끈적이는 슬픔, 그래도 사랑하지 않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올봄엔 또 어디서 꽃가지 꺾어놓고 마셔볼래? 아메리카를 떠돌고 있을 친구와 오며 가며 봄을 헤아리고 있을 친구에게.. 2008. 3. 14.
꽃이 피었다 Deep Purple의 Smoke On The Water를 들을 때면 생각이 난다. 뜨거운 방바닥, 차가운 실내공기 그리고 작은 방 안을 가득 채운 담배연기... 친구 한 명은 문옆에서 안쪽을 보며 앉아 있고, 다른 친구는 오디오 가까운 곳에서 담배를 끼운 손가락으로 볼륨을 조절하고 있다. 나는 벽에 기대어 허리를 조금 앞으로 구부린 상태로 듣고 있다. 간헐적으로 우퍼가 맹렬히 진동할 때면 조그만 쪽유리창을 통해 비쳐드는 빛줄기 속의 담배연기가 싱크로나이즈하 듯 일제히 앞 뒤로 흔들린다. 스피커에서 터져 나온 소리가 온 몸을 때리며 귀를 파고든다. 어느새 폐부에도 음악이 가득 찬 듯 가슴이 부풀어 오른다. 가청 한계에 가까운 큰 소리에는 제어할 수 없는 희열이 따른 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음.. 2008. 2. 9.
그의 적은 다만 밖에 있었다. 그의 적은 다만 밖에 있었다. 독후감을 빙자한 하소연이었습니다.칼의 노래를 이제 막 읽은 분이 아니라면 엉뚱하고 무모하고 이해하기 힘든 글일 것 같아 지웁니다.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엉뚱하지 않은 글을 실어야겠다는 압박이 옵니다.시니피앙님께 빚을 졌군요 ㅜㅜ 2008. 1. 23.